나는 보통 칼퇴를 하는 편이다.

6시에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7시쯤 되고,

남편님이 아이 둘을 데려다주고 (야근하러 회사로 돌아가고) 나면 7시 반 정도 된다.

아이들이 오면 안아주고 씻기고 이야기하고 웃고 부비고 하다가 저녁을 먹을라면 9시.

어린이집에서 저녁을 먹고 온 아이들이 집에 오면 또 먹고 싶어하기에 보통 맛을 음미하며 즐기기엔 무리데쓰.

 

요즘은 회사일도 무난, 육아도 무난해져서 그렇지 않은데,

지난 여름에는 정신적으로 너어어어무 상처받은 일도 있었고, 아이들도 잦은 병치레를 하는 통에 도통 입맛이 없었다.

그래서 주중 닷새 중 사나흘은 콘프레이크에 우유 말아 먹거나, 식빵에 딸기잼+크림치즈 조합으로 떼우곤 했다.

 

그러다 자정 무렵 퇴근한 남편님이 '자기야, 오늘도 많이 피곤했지?' 물으면 '아니야~'라며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또 굉장히 상심한 얼굴로 남편님이 '아이고- 내가 어서 팀을 옮기든 해야지, 우리 자기 힘들어서 어떡해-'하며

걱정해주는 그 모습에서 위로를 받았다; 뭐랄까, 티내지 않으려는 듯 티내면서 생색을 냈달까?;

'저녁은 먹었어? 또 콘프레이크로 떼운 건 아니지?'하고 물을 때 '그거면 충분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라고 하면

'그럼 어떡해?! 주말엔 꼭 나랑 맛있는 거 먹자!' 는 말에 조금 힘이 나기도 했고.

 

그러던 한 날에, 또 어김없이 자정무렵 남편님이 귀가했고,

그 때 잠든 아이들 옆에서 나도 잠에 들락말락- 반쯤 수면상태였던 것 같다.

먹는게 부실해서 그런지, 독박육아기가 길어져서 그런지 정말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던지라 전처럼 바로 일어나서

반겨주지 못하고, 그런 연약한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었다;

 

남편님이 내 뺨에 그의 뺨을 포개고서 '자기야, 자? 오늘도 피곤했지? 저녁은 먹은 거야?' 속삭이길래

'아, 그냥- 별로 먹고싶지 않아서 콘푸레이크 먹었어. 괜찮애...' 했더니 되게 잠깐, 남편이 머뭇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선 굉장히 이상하다는 듯이 '어? 그럼 식탁위에 육개장 사발면은 누가 먹은거야?' 란다?

 

 

...세상에...

내가 아까 콘푸레이크만 먹고 잠시 지나니 많이 허기진 것 같아서

사놔뒀던 육개장 사발면 꺼내다가 뜨거운 물 붓고 후루룩 원샷원킬한 기억이 나네?

 

그래놓고 세상 가련한 여자인 척 남편님에게 아무것도 안먹은 척 하고 요로고 누워있다?

 

응?

 

응, 응?

 

 

괜찮아. 그래도 그이는 나를 사랑한댔어.

'하하하. 우리 자기는 정말 너무 귀여워요!!!'라고 했어.

치매 걱정하는 나에게 '그래도 자기가 먹었다는 거 기억해냈으니 치매는 아닐거야'라고 안심도 시켜줬어.

 

 

 

그래도 마지막에 '괜찮애...'할 때 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네. 아니 왜 그렇게 힘을 빼고 이야기를 했을까아?

하아....

 

 

 

 

 

암튼, 독박육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은 씩씩하게 배추된장국 끓여서 아이들과 호로록호로록

한그릇 뚝딱하고 있는 애미의 지난 여름 이야기, 끄읏 :)

 

 

 

산책로가 일품이었던 오크밸리.

친정 부모님 모시고 아이 둘과 함께했던 1박 2일.

 

 

 

 

 

 

 

 

 

 

 

 

 

 

 

 

 

 

 

 

 

 

 

 

 

 

 

 

 

 

 

 

 

 

 

 

 

 

 

 

 

 

 

 

 

 

 

 

 

 

 

 

 

 

 

 

 

 

 

작년 11월 말에 할머니를 보내고 할아버지는 자꾸 약해지셨다.

니 애미가 너무 일찍 갔다. 너무 아까워. 를 연신하셨고, 치과를 간다고 나갔는데 세상이 정말 요상하다고만 하셨다.

워낙 정정하신 분이었는데, 급격하게 정신을 놓으시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할부지는 예전 모습이 아니다.

 

그런 할부지가 올해 99세, 백살을 일년 앞두고 백수파티를 하셨다.

할부지를 모시고 있는 친정부모님이 마련한 자리였는데, 작은 엄마가 음식 절반가량을 해오시고,

두 고모들이 과일에 떡을 맡았다. 할머니 상을 치른 후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였나보다.

그 자리에서도 할부지는 그저 피곤해보이셨다.

엄마 말씀으로는 기분이 좋아뵈신다고 했지만, 그저 내 눈에는 '이런 자리에 당신이 있어야지, 대체 어디간누-' 하듯

할머니를 그리시는 것 같아 자꾸 마음이 무거워졌다.

 

할머니를 보내고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걸로 알았다.

내가 가장 슬펐다. 할머니에게 나는 태어나 백일부터 일곱살이 될 때까지 키우셔서 막내딸과 진배없었고,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존재였다. 국민학교 내내 방학마다 시골에서 보냈고, 명절은 할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 늘 행복했다.

나에게 할머니는 세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남편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는, 정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그냥 나도 따라가겠다 생각하곤 했으니까.

 

할머니가 그렇게 갑자기 가시고 나서, 내 꿈에 나타나 반듯하고 깨끗한 한복같기도 하고 양장같기도 한 고운 옷을 입으신 모습을 보기 전까진

매일 밤을 울며 보냈다. 낮에 그린이를 보다가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고, 샤워를 하다가도 극극대며 울곤 했다.

울어도 울어도 죄송했다.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은 게 너무 죄송했다.

보고 싶은 만큼 찾아뵙지 않고, 듣고 싶은 만큼 전화걸어 음성을 듣지 않았던 게 후회됐다.

 

그래도 할머니는 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전화를 걸면 '하나라?' 하실 것 같았고, 나는 '응, 할머니! 나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이상 전화를 받아줄 할머니가 없다는걸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였지만, 실상 할머니를 보내고 세상 제일 슬픈 사람은 할부지겠구나 싶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그치지 않는 울음을 잔뜩 토해내고서 영정사진 속 할머니를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그리고는 집에 홀로 계실 할아버지를 모시러 갔더랬다.

눈이 많이 내려서 마당에 흰눈이 가득했는데 우리 할부지는 다 터진 비옷을 입고 큰 비로 쓸어내며 마당에 길을 내고 계셨다.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할부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마치 치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돌아올 할머니를 위한 길인 것 같아서 자꾸 눈물이 났다.

 

할머니를 염하는 자리에서 다들 할아버지 못 보시게 하라며 만류했다.

그래도 꼭 보고 싶다는 할부지를 모시고 함께한 납관식에서 나는 오열하고 가슴을 쳤지만 할부지는 그저 숨이 거칠어지실 뿐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 것도 같은데 가만히 바라보진 못했다.

지금도 너무 슬픈데 할부지가 우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정말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20살도 안되어 만난 할머니랑 거의 100살까지 거의 80년을 함께 보내셨던 할부지.

92세의 나이로 하늘로 떠난 할머니가 너무나 아쉽고 아까운 우리 할부지.

할부지 뵈러 친정집에 가면 할머니 영정사진을 가리키며 '니 애미, 여 있다. 니 많이 기다릿다!' 하신다.

사실 나는 할부지가 오래오래 나와 함께 계시길 기도하지 않는다.

그저 계시는 동안만은 건강하게, 아픔없이 계시다가 그리운 할머니곁으로 가시길 기도한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할머니가 왠지 내 곁에 계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그거 하나.

흰 눈 소복히 내린 출근길에도 '할머니, 그곳은 안춥지? 춥지 않게 있어야 해' 속엣말 되내이고,

해가 길어져 어둑해지기 전 퇴근길에도 '벌써 봄이 오나 봐, 할머니. 보고 싶어' 얘기하곤 한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가장 사랑하시는 나의 할아버지.

언제고 우리 셋 다시 만나면 내가 할머니, 할부지 어깨에 내 양팔 두르고

번갈아가며 뺨 부디며 웃고 싶고, 울고 싶다.

 

바로 이번 주말에 할부지 뵈면은 뺨 대어봐야지.

주름이 깊고, 서늘한 피부에 두 손 대고 '식사는 잘 하고 계신거에요? 보고 싶었어요!' 해야지.

 

 

봄이 되어 꽃이 피니, 자꾸만 생각나네, 할부지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했던 우리 할머니.

 

 

 

 

 

 

 

 

 

 

 

 

 

  1. 2017.05.16 16:14

    비밀댓글입니다

  2. 2017.05.31 10:40

    비밀댓글입니다

선 아빠가 오전에 갑자기 전화로 어젯밤 선이와 나눴던 대화라며 들려줬다.

 

 

아빠: 선아, 오늘은 아빠가 선이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가야 해.

 

선: 왜?

 

아빠: 일이 많아서 좀더 해야 할 것 같애.

 

선: 음- 그럼 가서 팀장님한테 도와달라고 해.

 

아빠: 왜?

 

선: 서로 도우면 좀더 빨리 끝낼 수 있잖아.

 

아빠: 응. 알았어. 도와달라고 할게.

 

선: 응. 그런데, 할 수 있는데까지 아빠가 우선 해 보고- 알았지?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선이가 장난감을 조립하거나, 모형을 만들는 등 어떤 작업을 할 때

가끔 잘 안된다며 볼멘소리를 하면

우리가 항상

'하는데까지 해보고 정 안되면 이야기해줘. 엄마아빠가 도와줄게'

하곤 했는데, 그걸 그대로 이야기하네.

 

이럴 때마다 다시금 다짐한다.

내가 선이의, 그린이의 거울이다.

바르게, 곱게 살자- (싱긋)

 

 

 

  1. 2017.03.15 23:23

    비밀댓글입니다

  2. 2017.04.13 01:35

    비밀댓글입니다

    • 선 부모 2017.10.23 17:42 신고

      엇!!!!! 4월에 쓴 댓글을 이제야 내가 본거니? 은?? ㅠㅠㅠㅠ
      어여 또 놀러와아앙- ㅋㅋㅋ 연말전에 선이랑 그린이한테 이모부 보여줘야징!! ㅎㅎㅎ

"엄마, 소원 빌었어?"

라며 선이가 대뜸 묻기에 아, 오늘이 정월대보름이었던가 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거실에서 국회의사당이 창 너머로 보이는데,

지붕에 닿을 것처럼 굉장히 가깝고 크게 달이 떴다.

 

 

매년 정월대보름마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소원리스트도 조금씩 바뀌어 갔지만,

제일 첫번째 소원은 늘 같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해주세요'

 

 

올해에는 할머니 소원은 빌 수가 없겠구나 싶어

또 아득해지고, 눈이 무거워지려는데

선이가 '엄마, 난 소원 빌었어!' 한다.

 

무슨 소원 빌었냐니까 비-밀 이라며 몸을 베베 꼬더니

얘기를 해준다.

 

 

"뭐 빌었냐며언,

밥 잘 먹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기 안걸리고 해주세요.

그래서 아이스크림 많이 먹게 해주세요.

(내가 맨날 감기 안걸려야 아이스크림 먹을수있다 했더니 ㅋ)

 

그리고

날개가 생겨서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스크림 먹고파하는 마음도 귀엽고,

하늘을 날고싶은 마음도 있구나 싶어 웃다가

 

선아, 하늘을 높이높이 날다가 엄마랑 멀리 떨어지게 되면 어쩌지?

했더니

 

갑자기 보름달을 향해 두손을 모으고 두눈을 꼭 감고는

"날개가 생겨서 하늘을 날지 않게 해주세요. 절대 안돼요, 절대!" 란다.

 

세상에.

어린 마음에 엄마랑 헤어지게 될까 봐 걱정됐나 베 ㅠ

이 애미가 동심에 상처를 냈고마 ㅠ

 

 

여튼, 참 감사한 일이다.

할머니를 떠나보내도 내가 견딜 수 있는 힘,

가족이 바로 곁에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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