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말에 할머니를 보내고 할아버지는 자꾸 약해지셨다.

니 애미가 너무 일찍 갔다. 너무 아까워. 를 연신하셨고, 치과를 간다고 나갔는데 세상이 정말 요상하다고만 하셨다.

워낙 정정하신 분이었는데, 급격하게 정신을 놓으시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할부지는 예전 모습이 아니다.

 

그런 할부지가 올해 99세, 백살을 일년 앞두고 백수파티를 하셨다.

할부지를 모시고 있는 친정부모님이 마련한 자리였는데, 작은 엄마가 음식 절반가량을 해오시고,

두 고모들이 과일에 떡을 맡았다. 할머니 상을 치른 후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였나보다.

그 자리에서도 할부지는 그저 피곤해보이셨다.

엄마 말씀으로는 기분이 좋아뵈신다고 했지만, 그저 내 눈에는 '이런 자리에 당신이 있어야지, 대체 어디간누-' 하듯

할머니를 그리시는 것 같아 자꾸 마음이 무거워졌다.

 

할머니를 보내고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걸로 알았다.

내가 가장 슬펐다. 할머니에게 나는 태어나 백일부터 일곱살이 될 때까지 키우셔서 막내딸과 진배없었고,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존재였다. 국민학교 내내 방학마다 시골에서 보냈고, 명절은 할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이라 늘 행복했다.

나에게 할머니는 세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남편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는, 정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그냥 나도 따라가겠다 생각하곤 했으니까.

 

할머니가 그렇게 갑자기 가시고 나서, 내 꿈에 나타나 반듯하고 깨끗한 한복같기도 하고 양장같기도 한 고운 옷을 입으신 모습을 보기 전까진

매일 밤을 울며 보냈다. 낮에 그린이를 보다가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고, 샤워를 하다가도 극극대며 울곤 했다.

울어도 울어도 죄송했다.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은 게 너무 죄송했다.

보고 싶은 만큼 찾아뵙지 않고, 듣고 싶은 만큼 전화걸어 음성을 듣지 않았던 게 후회됐다.

 

그래도 할머니는 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전화를 걸면 '하나라?' 하실 것 같았고, 나는 '응, 할머니! 나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이상 전화를 받아줄 할머니가 없다는걸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였지만, 실상 할머니를 보내고 세상 제일 슬픈 사람은 할부지겠구나 싶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그치지 않는 울음을 잔뜩 토해내고서 영정사진 속 할머니를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그리고는 집에 홀로 계실 할아버지를 모시러 갔더랬다.

눈이 많이 내려서 마당에 흰눈이 가득했는데 우리 할부지는 다 터진 비옷을 입고 큰 비로 쓸어내며 마당에 길을 내고 계셨다.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할부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마치 치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돌아올 할머니를 위한 길인 것 같아서 자꾸 눈물이 났다.

 

할머니를 염하는 자리에서 다들 할아버지 못 보시게 하라며 만류했다.

그래도 꼭 보고 싶다는 할부지를 모시고 함께한 납관식에서 나는 오열하고 가슴을 쳤지만 할부지는 그저 숨이 거칠어지실 뿐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 것도 같은데 가만히 바라보진 못했다.

지금도 너무 슬픈데 할부지가 우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정말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20살도 안되어 만난 할머니랑 거의 100살까지 거의 80년을 함께 보내셨던 할부지.

92세의 나이로 하늘로 떠난 할머니가 너무나 아쉽고 아까운 우리 할부지.

할부지 뵈러 친정집에 가면 할머니 영정사진을 가리키며 '니 애미, 여 있다. 니 많이 기다릿다!' 하신다.

사실 나는 할부지가 오래오래 나와 함께 계시길 기도하지 않는다.

그저 계시는 동안만은 건강하게, 아픔없이 계시다가 그리운 할머니곁으로 가시길 기도한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할머니가 왠지 내 곁에 계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그거 하나.

흰 눈 소복히 내린 출근길에도 '할머니, 그곳은 안춥지? 춥지 않게 있어야 해' 속엣말 되내이고,

해가 길어져 어둑해지기 전 퇴근길에도 '벌써 봄이 오나 봐, 할머니. 보고 싶어' 얘기하곤 한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가장 사랑하시는 나의 할아버지.

언제고 우리 셋 다시 만나면 내가 할머니, 할부지 어깨에 내 양팔 두르고

번갈아가며 뺨 부디며 웃고 싶고, 울고 싶다.

 

바로 이번 주말에 할부지 뵈면은 뺨 대어봐야지.

주름이 깊고, 서늘한 피부에 두 손 대고 '식사는 잘 하고 계신거에요? 보고 싶었어요!' 해야지.

 

 

봄이 되어 꽃이 피니, 자꾸만 생각나네, 할부지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했던 우리 할머니.

 

 

 

 

 

 

 

 

 

 

 

 

 

  1. 2017.05.16 16:14

    비밀댓글입니다

  2. 2017.05.31 10:40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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